| 이승제 목사(가까운교회 담임, 엠씨넷 대표)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매주 월요일 조회시간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국민의례를 하고 교장 선생님 훈시를 듣고 교가를 불렀었습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있겠거니 했었는데, 웬 노랑머리의 외국인과 통역하는 한국분이 나란히 서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외국인 아저씨가 하는 이야기가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아저씨는 손에 자그마한 파란색 책을 높이 들면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된다고 하셨고 연설이 끝난 후 앞줄부터 차례대로 책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것이 기드온협회에서 나온 성경책인 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 그것을 가져왔지만, 불교에 독실하셨던 어머님은 바로 아궁이에 넣어 불로 태워버리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여년의 긴 결혼생활에도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불임여성이셨는데, 시어머니의 권유로 절에 가서 천일기도를 드리면서 3년간 스님이 되셔서 자원봉사를 하시며 사셨습니다. 매일 청소와 밥과 설거지로 노동하셨고, 새벽과 저녁에 시간을 따로 내어 매일 천배씩 절하시면서 천일을 채우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그 정성의 대가였는지 어머님은 5대 독자인 저를 출산하셨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불교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불교와 깊은 관계로 인해 다른 종교에는 기웃거려 보지도 못한 채 그 속에서 불경을 외우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착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입학식을 하는 가운데 그 학교가 미션스쿨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예수 믿는 학교라고 제게 신앙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에서 기독 동아리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 그들의 초대로 수련회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생이 많이 모여 캠프를 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공대에선 볼 수 없는 많은 여학생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순전히 놀고 싶어서 자주 마시는 술 두병과 담배 몇갑을 더 넣고 혹시라도 시키면 부를 노래 두 곡을 준비하여 철없이 따라갔던 곳은 기독 동아리 수련회였습니다.

첫날부터 저의 놀고 싶은 기대감은 깨지게 되었고, 반복적인 예배와 식사 때마다 외워야 하는 요절과 한 시간이 넘는 설교 시간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 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억지로 참석한 마지막 집회에서 마음이 찢어지는 내 속에 숨겨진 죄를 끄집어내는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 우리 양심이 우리를 지옥으로 고발합니다.” 설교를 듣는 동안 저만이 알고 있는 죄들이 마음속에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양심은 그 설교를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새 지독하게도 가난하게 살았던 나의 삶과 장애인 누나를 구타했던 과거와 죽이고 싶었던 아버지의 여러 모습이 오버랩이 되면서 제 눈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전가 받으셔서 십자가에 대신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라는 말이 들렸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삶을 옮기길 원하는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라는 권면에 일어났는데, 저뿐 아니라 여러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뜨고 수련회 장을 혼자 걷는데 세상이 너무도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나는 그대로이고, 나를 둘러싼 어려운 환경도 그대로인데 제 마음은 이전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혼자 신기해하며 숙소로 돌아갔는데 어떤 한 형제가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제 예수님 믿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보았어요. 성경이 없으신 것 같은데, 제가 한권 드릴게요. 요한복음부터 읽어보세요.” 하면서 성경책을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파란색 책이었습니다. 순간 어린 시절 읽어 보지도 못하고 불에 태워졌던 그 책이 결국 내게 돌아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요한복음을 한 장, 한 장 읽어 나갔습니다. 생전 처음 읽는 성경이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10장까지 오게 되었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10절의 내용이었습니다. 그중 생명이라는 단어가 제 눈에는 솟아 올라와 보였습니다. ‘아하! 아침에 그렇게 세상이 깨끗하게 보이고, 똑같은 환경이지만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던 것, 죽이고 싶었던 아버지와 식사하며 화해해 보겠다는 마음이 든 것, 이 모든 것이 내게 생명이 생겨서 그런 것이구나.”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련회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소개받아도 결국 말씀을 읽어야 참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깊이 깨닫고 성장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성경이 흔해졌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말씀은 증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영향을 주었던 그 파란색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도 읽혀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