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阪神대지진 때 정신없이 들고 나온 가방에 있던 유일한 것

福岡女學院大學 准敎授 <神學博士>

神戶基督敎改革宗長老會

徐 亦猛

제9대 전국회장 고일록(인천캠프) 번역.제공

기드온협회는 저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금년은 기드온 성경을 읽고 주님을 영접한 지 딱 21년이 됩니다. 저는 중국 상해 출신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학교에서 무신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힘만 믿고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기로 결심 했습니다. 유학 계획부터 실현될 때까지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일본으로 유학

1994년의 가을, 기대에 가슴을 부풀리고 고향을 떠나 고베神戶YMCA학원 전문학교 일본어 학과로 유학을 왔습니다. 그러나 고베神戶에 와서 현실생활에 직면했을 때 기대는 바로 수구려 버렸습니다. 말도 모르겠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못하고 TV를 켜도 내용을 알 수 없어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생활비를 해결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 대신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고 일본 말도 늘지 않고 심신이 모두 피곤하여져서 일본에의 유학길이 자신에게 옳은 것인지 몇 번이나 의심 하면서 한 때는 유학을 그만 두려고 생각했습니다.

한신阪神대지진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고베神戶에서의 유학생활이 2개월이 지났습니다. 바로 그때 1월 고베神戶에서 한신阪神대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가 금세 불길에 휩싸였고 방에서 황급히 도망쳐 나올 때 정신없이 손에 닿는 가방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가방을 열어 보니 가방 안에 한신阪神YMCA에서 나누어 준 한 권의 기드온 성경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한 개의 가방과 한 권의 성경은 나의 유일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피난소에서

이제부터 어떤 길을 가야할까, 어떻게 생활해 갈 수 있을까 머릿속은 백지 상태가 되었지만 피난소에서 성경을 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마태복음 16: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 번 그 하늘 아버지 되시는 신神을 믿어보자. 그 신神이 이곳에 피난하에 있는 작은 나를 길러주시고 나의 걸어 갈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예비해 주시리라 믿어보자. 라고 결심했습니다.

주님께 이끌려

지진이 난 후 나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드디어 나 자신에게도 믿기지 않는 것이지만 교회의 목사로서 10년간 봉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잠언 16장 9절에 말씀한 것과 같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을 돌이켜보면 기드온 성경과의 만남은 분명히 주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기드온협회의 성경 배부 활동을 통하여 많은 영혼이 구원 받기를 마음으로 빌어마지 않습니다.

*일본 국제기드온협회 회보 12월호에 게재된 간증사례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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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간증>

성경과의 만남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일본 가쯔다 다이교회- 후루다 나나미 古田 奈奈美

 

고교생이었던 나에게 성경을 건네주신 분과의 12년만의 감동적인 재회를 하고 12년 전의 성서와의 만남으로부터 세례를 받기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셨는가를 이야기 하려합니다.

1999년 9월의 만남

 

내가 다니고 있던 찌바현의 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이른 아침 비가 오는 가운데 교문을 통과 하는 학생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나도 자전거로 한 손에 우산을 받쳐들고 교문을 통과 하는 학생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열다섯 살 극히 보통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가족 가운데 크리스챤은 없었고, 성경은 본 일도, 읽어 본 일도 없었습니다. 또한 나는 성실하고 슬기로운 학생도 아니었으며, 부모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반항적이었으며 교과서마저도 제대로 읽지 않고 있었습니다.

교문 앞에 서 있는 한분이 나에게 책을 건네주었습니다. 무엇이라 말을 건네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선 듯 손을 내밀어 책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 뒤편에 있는 자전거 계류장에 가보니 비로 생긴 물웅덩이가 있었는데 다른 학생들이 받았을 그 책들이 그곳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이 다 되어가는 때라 다른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버려진 책 여러 권을 주워서 책가방에 넣었습니다. 왜 주웠는지 모르지만 「아깝다. 주워야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부터 나의 머리맡에는 그 기드온 성경이 항상 놓여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다툰 날 밤, 부모에게 반항하여 마음이 초조할 때, 게으름 피우고 학교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뒹굴고 있을 때, 장례를 생각 할 때, 왠지 모르게 그 성경을 집어 들고 「도움이 되는 성구 찾기」의 목록에서 자신의 심경에 맞는 구절을 찾아 읽었지만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기회 있을 때 마다 성경을 펴서 몇 번이고 거듭 읽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성경을 읽으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때의 마음의 안정은 성경을 읽을 때 외에는 맛 볼 수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19세 때 부친의 직장을 따라 싱가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머리맡에는 기드온 성경이 놓여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있을 때 “힘내세요, 건강해야 되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이 책 그런대로 괜찮아......”라며 성경을 건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후 싱가폴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크리스챤이 된 어머니를 통해서 자연히 성경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귀국한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에 기드온 회원이 「기드온 사역 보고와 간증」으로 오셨을 때, 어머니는 너무도 반가워서 기드온 회원을 붙들고 「제 딸이 학교에서 받아 온 기드온 성경의 인도로 내가 지금 이 교회에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2012년 1월 12일의 만남

2012년 1월 12일 성경과의 만남이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변했습니다. 세 살 난 딸이 수주간 고열이 계속되어 가와자키병이라는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장폐색(腸閉塞)과 인프루엔자가 병발(倂發)하여 식음이 전폐되고 구토를 반복하면서 지처 늘어져있는 딸 앞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기드온 성경만은 바로 곁에 있었습니다. 기도 할 줄도 몰랐던 나는 그 성서를 붙잡아 가슴에 안고 “하나님!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라고만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가와자키병 치료에는 형액재제를 여러 시간에 걸쳐 투여하는데 투여가 끝나고 한참을 기다려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 담당의사로부터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는 더욱 충격을 받고 성경을 붙들어 쥐고 병실 바닥에 꿇어 앉아 말 할 수 없는 심정으로 하나님만을 계속 불렀습니다. 그 때 성경 끝 페이지를 열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구주로 수락하는 나의 결신서」에 이름과 날짜를 힘주어 써 넣었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금새 잊어버리고 교만한 자신을 회개치 않은 일, 그럼에도 그러한 나를 버리시지 않고 계속 불러주신 일 그리고 병든 딸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위대하신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두 시간 후, 한 순간에 딸의 병을 거두어 주셨습니다. 그때의 광경은 나의 서투른 글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습니다.

병실에 돌아온 담당의사도 조금 전의 딸의 증상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눈을 뜬 딸은 오랜만에 입을 열어 작은 소리로 “꿈에 하나님이 오셨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다니는 가쯔다교회의 형제, 자매들은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따뜻하게 반겨주었고, 훌륭한 목사님과의 만남도 있어 2013년 12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15세의 나에게 성경을 건네주시고, 사춘기의 괴로울 때 나의 몸이 병들었을 때, 언제나 성경을 펴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몇 번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기드온 회원들의 봉사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4년 9월 24일 제9대 증경전국회장 고 일 록 번역.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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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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