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의 작은 도시에 사는 안토니오는 젊은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안토니오의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관계를 정리하자며 안토니오를 떠났습니다. 깊은 실의에 빠진 안토니오는 결국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한 회원으로부터 한 권의 성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받은 성경을 펼쳐서 읽던 중, 시편 23편 말씀을 통해 마음에 큰 감동과 위로를 받게 되었고, 성경을 계속해서 읽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자살에 대한 결심을 돌이키게 되었고, 3일 후에 지역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프란시스코 안토니오는 오늘도 설탕 생산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주님을 열정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전해준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인생을 비관했던 프란시스코를 만나주셨고, 한 권의 성경이 자살을 결심한 한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

존 브래머(John Bremer)의 어머니 디(Dee)는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였습니다. 디의 가족은 가톨릭 신자였지만 일 년에 두세 번 미사에 참석했을 뿐입니다. 디와 그녀의 쌍둥이는 어린 나이에 음주와 흡연을 접했고, 이런 삶의 패턴은 몇 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디는 군인인 남편과 결혼해 캘리포니아에서 가정을 꾸렸습니다. 신혼 시절, 유산을 겪으면서 디와 남편은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디는 다시 아기를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임신 중에 기절하는 일이 생겼고, 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자신이 임신성 당뇨병과 함께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의사는 아이가 태어나면 장애로 심한 고생을 할 것이라고 말했고, 임신 중단을 권했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포기할 생각을 하고,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존의 어머니 디는 나중에 존에게 그날 밤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존의 어머니 디는 병실에 있는 자신의 간이침대를 살펴보다 기드온성경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디가 성경을 펼쳤을 때,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예레미야 1:5)라는 말씀이 보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녀가 성경에서 읽은 첫 번째 말씀이었습니다.

존은 어머니의 고백을 떠올리며 그날 밤 어머니는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아주 실제적이고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존의 어머니 디가 임신한 배 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 제 뱃속에 이 아기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존의 어머니 디에게 나는 너와 그를 매우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심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삶의 방향을 돌렸습니다. 아기를 포기하기로 했던 디의 삶은 하나님과 아들 존을 위한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날 밤, 병원에서 디는 술과 약물을 끊기로 결심했으며, 모든 중독과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담당 의사 중 한 명이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 의사는 디가 아기를 낳기로 했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디를 위해 함께 기도했고, 디에게 요한복음을 읽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녀는 성경을 읽으며, 아들의 이름을 으로 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디는 제왕절개수술로 존을 낳았습니다.

 

존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며,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에 나오는 성경과 구절이 없었다면,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기드온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사역 덕분에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존은 20년 간 청소년 목회를 했고, 현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더치 포크 침례 교회의 목사입니다. 그는 성경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고 있으며, 기드온사역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존 브래머(John Bremer)

존 브래머와 그의 아내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

1960년대 초, 그때 우리나라는 가난했습니다. 장년 신자들은 성경을 소지했으나 주일 학생은 대부분 성경이 없었습니다. 저처럼 불신 가정의 어린이는 아예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교회로 예배드리러 가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로망()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장학생이 되고 싶어서 공립 학교를 포기하고 장학제도가 있는 기독교 사립 중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매주 1회 전교생 예배와 한 시간 성경 과목 시간은 시골 농촌교회에서 자라난 제게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만난 것처럼 환상적이고 행복한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 손에 성경은 없었습니다. 성경을 들고 예배당으로 가는 소원을 품고 있던 저에게 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기적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부산캠프회원들이 우리 학교를 찾아와 전교생 700여 명에게 성경을 선물하였습니다. 성경 갖기를 소망하였던 저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전교생 700여 명 중에서 저만큼 행복해 한 학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로부터 제 책가방 속에는 기드온성경과 영어 단어 책이 필수품이 됐습니다. 기드온성경 덕분에 성경은 저의 평생 친구가 되었으며, ‘No Bible, No Breakfast’(성경을 읽지 않고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어딜 가든지 성경을 지니고 다닌다라는 생활신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실제로 이 신조는 저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19777월 군종장교로 훈련을 받을 때 완전 군장으로 광주 무등산(1,187m)을 넘어 동복 유격장을 향해 강행군을 했습니다. 군복 주머니 속 모나미 볼펜조차 무겁게 느껴져서 내던져 버릴 만큼 무더위 속에서 참으로 힘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군복 주머니 속에는 기드온성경이 어김없이 들어 있었습니다.

 

기드온성경이 너무 좋아 열심히 읽고 암송하다 보니 김해, 창원 지역 SFC(Student For Christ, 학생신앙운동) 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신학생 시절과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과 동료들로부터 성경 박사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어떤 학위나 명예보다 이 칭찬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모교인 고려신학대학원에 초청받아 설교할 때도 저는 젊은 신학도들에게 성경 박사가 되시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울산에서 담임 목회를 하는 아들에게도 이 한 가지를 강조합니다.

 

은퇴하고 지금도 매일의 철칙이요 취미요 즐거움성경 묵상입니다(119:103, 50). 기드온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앞으로 북한 땅 2,200만 동포들에게도 기드온성경을 전달하는 꿈을 가지시길 축복합니다!

 

김철봉 목사(사직동교회 원로)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

국제기드온협회를 알게 된 것은 오래전 일입니다. 제가 졸업한 중학교는 미션스쿨이어서 아침마다 수업 전 예배를 드리고, 수요일은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예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기드온협회에서 학교에 방문하여 파란색으로 된 성경책을 전교생에게 배부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기드온협회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여동생이 미국으로 유학하게 되어 여동생의 미국 유학 시작을 돕기 위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여동생은 미국에서 학교를 등록하고 저는 미국에서 혼자 호텔에 머물 때, 별생각 없이 열어 본 서랍장에서 성경책 한 권을 발견하였습니다. 기드온협회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펼친 성경책 앞에는 두려울 때, 걱정될 때, 고독할 때 도움이 되는 성경구절이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힘이 되는 말씀들이 있었구나생각하며, 모태신앙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성경을 잘 알지 못하던 저에게 성경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후 저는 오랜 유학 생활을 하며 매일 성경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성경책을 들고 논산 훈련소에 입소했지만 개인 물품을 다 집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매일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던 저는 약 한 달여간 하나님 말씀 없이 지내며 말씀에 매우 갈급했습니다. 매주 주일 훈련소의 연무대교회를 나갈 때마다 벽면과 큰 거울에 쓰여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스치듯 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 말씀이 제게 큰 은혜요 힘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주에 진중 세례식이 열렸고 저는 기드온협회에서 배부해 주신 성경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 손에 들려있다는 그 감동과 감격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분대장 훈련병으로 그리고 다른 훈련병들보다 나이가 많아 형 같은 존재로 동료 훈련병들을 챙기느라 한순간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크기 덕분에 군복 어디에나 넣고 다닐 수 있었던 성경을 잠시 훈련을 대기하는 땡볕에서,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읽으며 다른 훈련병들을 잘 격려하고 이끌 수 있었고, 훈련소 수료 때 훈련소장 상장을 받으며 훈련병 시절을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의대를 다니다 늦은 나이에 입소했기에 저는 의무병 주특기를 받아 의무학교로 후반기 교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받은 것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 후반기 교육학교 특성상 매일 밤 교육생들은 연등을 신청하여 공부할 수 있습니다. 의무학교에서는 마지막 주 최우수 교육생에게 상장을 수여합니다. 의대를 다니다 온 제게 제가 의무학교를 최우수로 수료할 것이라는 다른 교육생들의 기대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매일 연등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연등을 했습니다. 기드온협회에서 배부해 주신 성경 맨 앞쪽에는 성경을 소개하는 기드온협회의 글이 있습니다.

 

그의 역사는 참되고 그의 결정엔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대를 인도하는 빛, 그대를 길러주는 양식, 그대를 기쁘게 하는 위안입니다.

성경에서 낙원은 되찾게 되고 천국은 열리고 지옥문이 드러나게 됩니다.

성경은 부광이고 영광의 낙원이요 기쁨의 원천입니다.

성경이 이생에서 주어진 책이요 심판 날에 펼쳐질 책이고 그리고 영원토록 기억하게 될 책입니다.”

 

위의 글이 얼마나 제 마음의 문을 두드렸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참된지, 정말 나를 택하신 결정에 변함이 없는지 너무나 궁금해졌고, 매일 한 겨울 추운 밤 군대에서 손바닥만 한 성경을 펼칠 때 하나님은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남자가 나이가 들어가며 군대보다 더 힘든 시기가 찾아오지만 훈련소에 입소한 남자에게 가장 힘든 시절은 훈련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 인생의 가장 힘든 시절, 기드온협회는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전역할 때 기드온협회에서 배부해 주신 성경책을 가지고 전역했고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 전쟁이 나더라도 저의 진정한 개인병기이자 군인의 검이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모 대학병원에서 외과 전공의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매일 강도 높은 수술과 당직을 서면서도 만나는 환자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며,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환자들을 위해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없을 때도 많았고 삼일예배, 금요철야, 주일예배를 모두 드리지 못하며 영적으로 갈급할 수밖에 없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가 없이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근무를 하며 수술 방에서는 수술하고 있는 환자 위로 쓰러져 버릴 것 같고, 병동에 나와 환자들을 보러 갈 때면 몇 발자국만 걸어도 어지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저는 수술 전 대기실(환자분들이 수술받기 전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는 공간)로 수술받을 환자를 옮기기 위해서 갔고 환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 기드온협회에서 배부한 붉은 색의 신약전서와 시편, 잠언, 하나님의 말씀이 제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시편 23편을 펼쳤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육체적으로는 탈진해 버린 저를 말씀은 그 자리에서 부족함이 없게 했고,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했습니다.

 

제 간증은 불신자였던 사람이 군대에서 받은 기드온협회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간증이나 불신자였던 환자가 병원에 배치된 기드온협회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간증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기드온과 같이 가장 작은 지파 사람으로 가장 작으며 겁 많은 사람이 기드온협회에서 배부하는 모든 곳 학교, 호텔, 군대, 병원-에서 주님 말씀을 만나며, 담대하게 나팔과 횃불을 들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힘든 두 번의 시간에서 두 번 모두 기드온협회가 배부해 주신 성경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저는 그 시기를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부하는 거룩한 사역을 오늘도 감당하고 계시는 기드온협회 관계자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자격 없는 저에게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6:1)”

 

박종민 회원(서서울캠프)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

제가 전 세계를 다니며 간증과 강의를 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된 것은 고1 시절에 받은 기드온 성경책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며 말씀의 능력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저의 친가, 외가 모두가 불교 집안입니다. 신실한 불교 신자이신 부모님께서는 대를 잇기 위해 불공을 드리셨습니다. 아버님은 아들을 잘 낳게 해 준다는 용한 절이 일본에 있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일본으로, 어머니는 대구에 유명한 절인 팔공산에서 불공을 드리시면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자연스럽게 불교를 믿으며 자랐고, 범어사 절이 세운 금정중학교(부산)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당시 반 편성 배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더니 입학식 날 전교생 앞에서 선서도 하고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살짝 부르시더니 불교를 잘 믿고 지금처럼 공부를 잘하면 특목고에 가도록 도와준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불교 집안에서 불공을 드려 태어난 아들인데, 잘 믿고 공부를 잘하면 특목고를 가고, 그럼 스카이 대학에 쉽게 진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교를 본격적으로 믿게 되었고 불교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내내 반장을 하고, 3 때는 불교학생회장이 되었습니다. 조례 때 제가 목탁을 치면 전교생들과 선생님이 본관의 커다란 불상을 향해 절을 했습니다. 종교시간에도 목탁을 치며 교실에 있는 부처 사진을 항해 반 전체 학생들을 세워서 세 번씩 절을 하게끔 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아이에게는 좋은 말로 할 때 절하라고 협박도 하고, 아버지가 목사님이라는 아이의 머리를 목탁으로 내리치며 절하라고까지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저보고 교회 가자는 친구들에게는 발로 차고 왕따시키겠다고 하며 욕하던 아주 못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컴퓨터 추첨을 통해 브니엘 고등학교(기독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교회 가지 않을 것과 불교를 브니엘고에 맘껏 전파하겠다고 아버님과 약속한 후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약속으로 커다란 염주를 팔목에 차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게 된 고등학교에서는 매일 방송으로 예배를 듣게 되었고 종교시간에 전도사님을 통해 성경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과 예수님, 천국과 지옥에 관한 얘기를 들을 때 너무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종교시간에 전도사님께 버릇없이 화를 내며 소리를 쳤습니다. “천국, 지옥 좋아하시네, 웃기지 마세요. 그딴게 어디 있습니까? 종교에는 자유가 있는데 참 종교가 기독교라 하는 예수라는 사람이 뭔데 나 때문에 죽었다는 말입니까? 그만하고 나가세요.” 교회 안 다니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환호성을 쳤고, 전도사님을 항상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듣기 싫어하며 반항하고 있을 때 받은 것이 기드온에서 나눠준 성경입니다. 방송 예배를 드릴 때, 성경시간에 성경을 배울 때 볼 수 있도록 받았던 책이 바로 기드온 성경책이었습니다. 파란색 포켓 성경책을 받곤 처음에는 버릴까 하다가 공짜니까 서랍에 넣어놨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점점 더 커질 때쯤 제대로 반항해보자는 생각으로 성경을 펼쳐서 보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방송예배 때, 성경시간 때마다 열심히 기드온 성경책을 보았습니다. 이해 안 되거나 반박하고 싶은 것은 밑줄도 긋고 따로 체크도 했습니다.

이런 반항이 두 달 동안 계속되었고 그동안 열심히 기드온 성경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베푸셔서 죽음에 관한 정의를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종교시간 전도사님을 통해 육체적 죽음의 정의는 심장박동이 멈추는 것이며, 성경적 죽음의 정의 첫 번째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 불에 가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둘째 사망이라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성경적 죽음의 정의 두 번째를 들을 때 기드온 성경책을 펴서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1:8)이 말씀을 찾아 공책에 적으면서 예수님을 만난 그때를 말입니다.

그 뒤로 기드온 성경을 주머니에 쏙 넣어 다니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렇게 저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 말씀을 통해 믿음의 초석을 깔게 해 준 기드온 성경책 정말 고맙습니다.

성경을 학교와 호텔, 교도소 등 곳곳에 보내시는 일을 하시는 기드온협회 모든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최병호 국제혁신영재사관학교 교감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

저는 20세까지 교회도, 성경도, 예수님도 전혀 몰랐습니다. 제 아버지는 삶이 어려웠는지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세상을 등지고 속세를 떠나 승려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와 형제들은 힘든 삶을 살게 되었고, 저는 20세부터 독서실에서 미래를 준비하며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독서실에 기드온협회에서 나온 파란색 작은 신약성경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성경을 주워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찬물에 세수를 하고 갈급한 심령으로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복음서를 읽는 가운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이 가슴을 쿵쿵 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가하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11:25-26)라는 말씀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읽어 가는 가운데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4:12)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는 말씀이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었기에 기도할 줄도 모르고, 예배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성경을 읽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기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이웃에 살던 집사님께서 교회를 가자고 한 것을 계기로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엉겁결에 처음 나간 곳이 대구제이교회였습니다. 교회당에 앉아있는 저의 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새벽기도회를 시작으로 예배를 드렸으며,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통하여 기록된 문서이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할 사명이 기드온협회와 모든 분에게 있음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박연근 목사(대구쉼터교회)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에 대해 생각하며 기드온협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저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영적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손을 내밀고자 하는 소망이 저를 이곳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은 수단은 성경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작은 손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1. 협회와의 만남

어느 조직이나 단체는 늘 인간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20234,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저희 교회에서 오랜만에 교도소를 방문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친교위원회 소속이던 저는 처음 가보는 교도소여서 약간 긴장했습니다. 오는 길에 같이 갔던 기드온 회원과 재소자에게 나눠준 작은 성경책 이야기를 하다 기드온협회를 소개받았습니다.

선입견과는 달리 매우 선한 표정으로 찬송가를 따라 부르던 재소자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 각각의 쓰임으로 보내 주셨으니 다 고귀한 지체일 텐데 세상을 사는 고달픔과 처지가 어찌 그리 다를까요.

며칠 후 동행했던 회원에게 기드온 입회 의사를 말씀드렸고 절차를 밟았습니다. 5월에 회원이 되어, 정식 기드온이 되자마자 전북 고창에서 진행하는 대량성경배부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30여 년 교직 생활을 했던 제가 학교를 찾아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나눠주는 감회는 특별했습니다.

, 6월에는 부산 전국대회가 있어 참석했는데 큰 규모의 대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진행되는지, 사역을 어떻게 감당하시는지 등등 많은 사례를 접하게 된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후, 7월에는 미국 켄터키 루이빌 국제대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여를 권유받았습니다. 가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여러 가지로 망설여졌습니다. 많은 묵상과 기도 중에 이 험한 세상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보살핌과 은혜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들자. 예수님을 본받아 조금씩이라도 닮아가도록 노력하면서 살아가자. 사랑하고 베풀고 살며, 기도하고 찬송하자.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는 여러 선배와 교우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기드온의 사명으로 나의 신앙생활을 다져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를 설득해서 켄터키 루이빌 국제대회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2. 선교활동의 의미와 경험

켄터키 루이빌 국제대회에서 저는 국제기드온협회가 탄생하고 발전되어 왔던 역사를 한꺼번에 알 수 있어서 너무 특별했습니다. “Holding Fast 생명의 말씀을 밝혀주제가 신선했습니다.

국제기드온협회의 여러 형태의 선교 활동은 저에게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실시하는 프로젝트들을 비교하며, 기독 실업인과 전문인 크리스천들이 이 단체를 만든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3 세계에 속하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이들의 미소와 감사함을 표현하는 눈빛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특별히 모든 활동이 자비량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헌신과 희생을 상기시켰습니다.

국제대회에서 저는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의 다양성에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기드온 광주캠프에서는 여러 교회에서 모인 기드온 형제들과 매주 주간기도회와 월례회를 통해서 말씀과 찬송, 기도를 통해 서로에 대한 우의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들과의 교제와 다른 매우 은혜로운 만남이었습니다.

전국대회, 국제대회를 경험해 보니 만남의 규모와 프로그램에 따라 느낌과 배움과 기쁨이 매우 다르고, 색다른 은혜를 맛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형제들과 소통하며 협업하는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서로에게 배우고 존중하는 자세가 우리의 협업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형제들과 함께하는 일은 저에게 큰 특권이었습니다.

 

3. 성장과 배움의 과정

국제기드온협회의 일원으로서 저는 지속적인 성장과 배움의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저를 더욱 온전한 신앙인으로 만들어주고, 세계 각지의 다양한 이야기와 고난 속에서 나아가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국제기드온협회와 함께하여 세계의 복음의 불모지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노력과 기도로 여러 이웃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변화의 중심에 서고자 합니다. 온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여정에서 우리가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 길이 더욱 밝아지고, 세계에 희망의 빛을 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족이 되길 기대합니다.

 

박인석 회원(광주캠프)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져올 변화와 차지할 비중이 이렇게 심대해질 것은 성경을 처음 읽기 시작했던 19783월 말, 그때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기독교 고등학교로 학교가 추첨 배정되어 입학한 것이 1976년이었다. 입학식 맨 마지막에 한 신사분이 나오셔서 교장 선생님께 성경책을 전달하는 순서를 가졌던 그 시간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되는 게 스스로도 좀 놀랍다. 그렇게 많은 학생에게 성경책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 첫째 놀라웠고, 어린 학생이 보기에도 바쁜 분일 것 같은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참석했다는 것도 의아했었다. 학교에서 마련한 것이 아닌데 이것을 나누어 주는 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하는 것일까 그것도 궁금했다. 45년이 지나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자면, 나 한 사람에게 일어난 결과만을 보아도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씨를 뿌리러 오신 분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이 기드온 사역이라는 것은 좀 더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가정은 외가나 친가 모두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한 그런 아픈 가족 역사가 있었다. 한 세대마다 가족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고, 그로 인해 남은 가족들의 삶은 슬픔, 원망, 어두움,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었다. 얼굴도 못 본 언니의 죽음 이후 어려서부터 우리 집을 감싸고 있던 정체 모를 무거움도 그 연장선에 있던 것이었다. 긴장하고 답답한 분위기에서 고등학교 내내 죽음에 대한 충동과 무력감과 불안과 싸워야 했다. 내 손에 들린 그 작은 성경책과 함께,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께 매달리기 시작하면서 기도한 내용은 인생에 길이 있다면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세상과 사람의 인생에 어떤 작동 원리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답을 얻을 거라는 기대보다는 그냥 절박함이었다. 그 절박함은 지난 45년간 성경책을 읽지 않고 하루를 지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간주하고 살도록 내모는 발화점이 되었다. 그리고 얻은 결과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그 기도를 들어 주셨는지를 누구에게나 말해 줄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탈 운명화를 증언하게 되었다.

 

그 파란 포켓용 성경책을 아무 데나 들고 다니며 읽고, 심지어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비웃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읽으면서 성경이 얼마나 놀라운 책인지, 아니 그냥 책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기 위해 마련하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경험할 수 있게 하셨다.

성경을 읽기 시작해서 처음 한동안은 너무 몰라서 깜깜하다는 표현만 나오는 그런 수준이었는데, 2년 반쯤 되어 말씀으로 거듭나면서 성령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 주시면서 인생에는 분명한 길이 있다는 것에 눈을 뜨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시고, 인생의 문제를 새롭게 보는 관점을 열어 주셨다. 특히 죽음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그런 세력이 덮쳐올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하고 이기는지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시고 가르쳐 주셨다. 실제로 막 믿기 시작하신 시점에서 당뇨 합병증으로 죽음이 선고되었던 엄마가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나셔서 복음 전도자로 서시는 기적도 있었다. 목회를 하면서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세력에서 건짐받는 체험을 여러 번 했다. 이 여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보여주시고, 그래서 약속을 붙잡고 견디고, 그 길을 전망할 수 있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고, 소망을 갖게 하셨다. 무엇보다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복음을 살게 하시고 복음을 맡기신 것이다. 45년 전에, 선물 받은 성경책을 읽으며 생명의 새로움 안에 살게 된 한 어린 학생에게 어떤 열매들이 맺어지게 되었는지, 기드온 가족들과 함께 나누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드온 가족들의 수고를 통해 주님은 계속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을 굳게 믿는다.

 

김숙현 목사(사귐과 섬김의 교회)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져올 변화와 차지할 비중이 이렇게 심대해질 것은 성경을 처음 읽기 시작했던 19783월 말, 그때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기독교 고등학교로 학교가 추첨 배정되어 입학한 것이 1976년이었다. 입학식 맨 마지막에 한 신사분이 나오셔서 교장 선생님께 성경책을 전달하는 순서를 가졌던 그 시간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되는 게 스스로도 좀 놀랍다. 그렇게 많은 학생에게 성경책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 첫째 놀라웠고, 어린 학생이 보기에도 바쁜 분일 것 같은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참석했다는 것도 의아했었다. 학교에서 마련한 것이 아닌데 이것을 나누어 주는 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하는 것일까 그것도 궁금했다. 45년이 지나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자면, 나 한 사람에게 일어난 결과만을 보아도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씨를 뿌리러 오신 분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이 기드온 사역이라는 것은 좀 더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가정은 외가나 친가 모두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한 그런 아픈 가족 역사가 있었다. 한 세대마다 가족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고, 그로 인해 남은 가족들의 삶은 슬픔, 원망, 어두움,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었다. 얼굴도 못 본 언니의 죽음 이후 어려서부터 우리 집을 감싸고 있던 정체 모를 무거움도 그 연장선에 있던 것이었다. 긴장하고 답답한 분위기에서 고등학교 내내 죽음에 대한 충동과 무력감과 불안과 싸워야 했다. 내 손에 들린 그 작은 성경책과 함께,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께 매달리기 시작하면서 기도한 내용은 인생에 길이 있다면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세상과 사람의 인생에 어떤 작동 원리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답을 얻을 거라는 기대보다는 그냥 절박함이었다. 그 절박함은 지난 45년간 성경책을 읽지 않고 하루를 지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간주하고 살도록 내모는 발화점이 되었다. 그리고 얻은 결과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그 기도를 들어 주셨는지를 누구에게나 말해 줄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탈 운명화를 증언하게 되었다.

 

그 파란 포켓용 성경책을 아무 데나 들고 다니며 읽고, 심지어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비웃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읽으면서 성경이 얼마나 놀라운 책인지, 아니 그냥 책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기 위해 마련하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경험할 수 있게 하셨다.

성경을 읽기 시작해서 처음 한동안은 너무 몰라서 깜깜하다는 표현만 나오는 그런 수준이었는데, 2년 반쯤 되어 말씀으로 거듭나면서 성령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 주시면서 인생에는 분명한 길이 있다는 것에 눈을 뜨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시고, 인생의 문제를 새롭게 보는 관점을 열어 주셨다. 특히 죽음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그런 세력이 덮쳐올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하고 이기는지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시고 가르쳐 주셨다. 실제로 막 믿기 시작하신 시점에서 당뇨 합병증으로 죽음이 선고되었던 엄마가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나셔서 복음 전도자로 서시는 기적도 있었다. 목회를 하면서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세력에서 건짐받는 체험을 여러 번 했다. 이 여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보여주시고, 그래서 약속을 붙잡고 견디고, 그 길을 전망할 수 있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고, 소망을 갖게 하셨다. 무엇보다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복음을 살게 하시고 복음을 맡기신 것이다. 45년 전에, 선물 받은 성경책을 읽으며 생명의 새로움 안에 살게 된 한 어린 학생에게 어떤 열매들이 맺어지게 되었는지, 기드온 가족들과 함께 나누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드온 가족들의 수고를 통해 주님은 계속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을 굳게 믿는다.

 

김숙현 목사(사귐과 섬김의 교회)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

불교인으로의 삶

주님을 만나기 전만 하더라도 면벽에 반가부좌로 반야심경을 독송하면서 새벽을 깨우며 하루를 시작한 독실한 불교 신자였습니다. ‘만화거사라는 불명도 받았습니다. 사형수 교화스님이 신 삼중스님이 쓰신 가난이 죄가 아닐진대 나는 죄가 되어 죽습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며 그들의 명복을 염주에 담아 빌기도 했습니다. 초하루 보름에는 법회에서 사회도 보고, 불자 문인들과 함께 교도소, 소년원에서 재소자들과 어울려 축구도 하고 교화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는 이런 나의 생활이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가 기드온의 회원으로서의 지금, 이 순간은 참으로 감회가 남다릅니다. 감히 나는 나의 변신을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르심의 은혜와 예수로 살아가는 삶

201263일 예순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당시에는 알 수 없던 어떤 이끌림에 의해 스스로 간 주님의 집, 부산남부교회. 그날은 나에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된 역사적이고도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저를 구원하기 위한 딸과 사위, 아내의 간절한 기도는 마침내 부르심의 은혜로 이어지고, 이미 초로에 접어든 용서받을 수 없는 보잘것없는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부르신 것을 저는 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흥집회 참석 후, 제자훈련, 양육 교육, 셀 모임 등 세속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주님께서는 때에 따라 맞춤 처방으로 붙들어주시고 지난날의 방탕한 생활을 품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점차 주님이 저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느끼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끊임없이 그리스도인으로 다듬어 가시는 주님, 마침내 한국 국제기드온협회 기드온의 용사가 되다

돌이켜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지경을 넓히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은 새가족 섬김, 유초등부 교사(차량운행), 국수 전도, 아버지 학교 수료, 평신도 전문인 선교단체 훈련 수료와 터키 쿠르드 민족을 품은 의료선교, 그리고 한국 국제기드온협회 동부산캠프의 회원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캠프 회장을 통로로 저에 대한 그분의 뜻을 계속 펼치시며 이루어 가도록 이끄셨습니다. 본 캠프의 주간기도회와 제57차 전국대회에 처음 참석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순서 하나하나에 가슴 뭉클함의 감동과 감격스러움에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세워 한국 기드온의 큰 그림을 목도하게 하셨습니다.

 

회원으로서의 위대한 첫 경험

양산지구 LSB(성경대량배부)사역은 위대한 첫 경험이었습니다. 양산범어고등학교 남녀공학 학생들과 부산대학교에서 성경을 전했습니다. 저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슴 벅찬 가운데 먼저 양산범어고등학교 성경배부의 현장에 섰습니다. 받기를 거부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땅끝까지 이르러 전도하라는 말씀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배부했습니다. 등교 시간에 쫓겨 한꺼번에 무리 지어 몰려오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성경을 나눠줄 수 없는 현장의 어려움에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건네주는 성경책을 받아든 학생들, 거부하는 학생들 모두 한결같이 감사합니다라며 목례하는 선하디선한 눈길에서 장차 저들 중에서 누군가는 나와 똑같이 이 자리에 서서 기드온의 성경책을 전할 것이다라는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벅차고 공연히 마음이 바빠지기도 했습니다. 녹록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오직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담대함으로 성경을 배부했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전한 두 차례의 성경배부 사역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기드온 사역에 대한 부르심의 사명을 확인하고 온몸으로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배부한 기드온 성경이 길잡이가 되고 누군가의 삶을 주께로 인도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두 번에 걸쳐 성경을 배부하면서 이 약속의 말씀을 온몸으로 품었습니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저에게 2번의 성경배부와 전국대회 등은 소중하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많은 것을 훈련하고 익히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린 주 안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납니다. 주 안에서 기드온에 있을 때 더욱 빛이 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손동수 회원 (동부산캠프)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