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 회원이 되기까지 가슴 뭉클했던 이야기


이창한(부산진 캠프)

저의 출생지는 이북입니다.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믿음의 가정에 장남으로 태어난 모태신앙입니다. 6.25 전쟁으로 인하여 국군의 1.4 후퇴 당시 선교사의 권유로 가족이 거제도로 피난하여 살다가 1953년에 부산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전쟁 피난민의 고달픈 생활을 믿음으로 이겨내신 부모님의 신앙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어렵게 자라왔습니다.

저와 기드온과의 첫 인연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65년경 이었습니다. 부산캠프가 창립되고 이듬해 제가 출석하던 교회에서 순방예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국회장 양봉화 장로님과 이광혁 장로님을 비롯한 몇 분의 기드온께서 오셨는데, 그분들의 가슴에 있는 기드온 휘장이 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영어공부도 할 겸 용기를 내어 영문으로 된 성경 한 권을 얻어서 애지중지 잘 간수하며 지금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약 10여년이 지나 저는 사회인이 되어 조그마한 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교회의 장로님으로 부산캠프의 기드온회원이셨는데,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전 직원이 모여 예배를 드린 후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책 운반을 위하여 화물차를 운전하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L.S.B(성경대량배포작전)에 제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 기드온들과 함께 성경책을 운반하고 나르면서 마음속으로 '정말 귀한 일을 하는 단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기드온회원이 되어 주의 일을 하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5년 어느 날 이웃교회의 장로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부산진구에 기드온캠프가 새롭게 조직되는데 함께 참여하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기드온을 처음 알게 된 이후 40년 만에 나도 사역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여 30년 전 성경운반 때 함께 계셨던 낯익은 분들과도 안부를 나누고 기쁜 마음으로 기드온이 되었습니다.

지난 10년간 기드온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려고 매사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인간인지라 가끔 지치거나 나태해질 때면 기드온 휘장을 만져보며 10대 시절의 감격을 되새기곤 합니다. 주간기도회나 성경보급엔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구원의 사역에 나도 수종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부족한 제 손으로 전해진 성경책을 읽는 자가 성령의 능력으로 감동되어 구원받고 천국백성 되게 하옵소서” “저의 남은 생애가 영혼구원의 사역에 힘쓸 수 있도록 필요한 건강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결산할 때 부끄럽지 않도록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해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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