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드온 48년
- 그리스도인이 평생 헌신할 가치 있는 일 -
이신웅 원로회원(군산캠프)
- 1977년 한국 국제기드온협회 군산캠프 입회 - 외과 의사로 월남전 군의관 복무 - 예수병원, 씨그레이브 기념병원(개정병원의 전신) 외과과장 근무 - (현) 군산 이외과 원장 |
제 나이 36세이던 1977년 한국 국제기드온협회에 입회하여 4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기드온협회에 입회 전, 기드온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1970년 6월 21일 전문의 수련을 마치고 군의관 교육을 받기 위해 대구 군의학교에서 훈련받고 있던 때입니다. 8주간의 보병훈련, 4주간의 의무교육을 받고 첫외출이 허락된 곳이 군의학교 교회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군종 사병들이 빨간색의 작은 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항아리에 횃불이 그려진 기드온 마크가 새겨진 영어 성경이었습니다. 이 작은 기드온성경은 월남에서 군복무를 하던 내내 저의 왼쪽 포켓 가슴 속에 있었습니다.
월남보충대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때, 공군기지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 그리고 주말에 시내에도 못 나가고 영내에 있을 때 어김없이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 면이 땀에 젖어 퇴색되고 부스러졌지만, 젊은 날의 추억이 얽힌 저의 소중한 보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의 진찰실 책상 위를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기드온협회에 들어오도록 권면을 받은 것은 현 개정병원의 전신 씨그레이브 기념병원 외과과장으로 일하며 개정교회에 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중동교회 장로로 기드온회원이셨던 이병렬 장로님이 성경을 무료로 배부하는 선교단체이니 가입하라고 하셨습니다. 권면을 받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기드온 활동을 하면서 신앙과 인생의 많은 멘토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주간기도회라고 하는 조찬기도회에는 군산시 모든 교단의 어른 장로님들이 아침 일찍 나오셔서 풋내기 집사인 저를 반겨 주셨습니다. 1977년 입회 후 처음 참석한 조찬기도회 장소는 영광학원 이사장이셨던 손재덕 장로님의 사무실이었습니다. 영광여고 입구 왼쪽 이층 건물로 그 옆 창고는 기드온 성경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학교 봉고차에 “한국 국제기드온협회 군산캠프”라고 한글과 영어로 써 붙이고 서해안의 여러 학교들을 방문하여 성경을 배부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주간기도회에서는 기드온 [가이드북]에 따라 성경을 함께 읽고 예배를 드렸는데, 이 기드온 주간기도회는 제 신앙을 자라게 하고 성장시켰습니다. 모태 신앙인이었고, 미션스쿨을 졸업했고, 예수병원에서 일했고, 개정교회 회계집사였지만 신앙이 생기고 깊어진 것은 기드온 주간기도회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창립회원 중 가장 원로이셨던 허현 장로님은 군산시 초대 민선 시장이셨던 분으로, 둔율동 복음교회 원로장로로 교단의 큰 어르신이셨습니다. 제가 처음 뵈었을 때가 80대 중반 정도 되셨는데 걸으실 때마다 숨을 헐떡거리시면서도 항상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허현 장로님은 경주에서 열린 전국대회에 다녀오시고 일주일 만에 뇌출혈로 소천하셨습니다. 장로님은 생의 마지막까지 기드온의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이런 분들의 신앙의 모습과 인간관계와 삶의 태도가 저에게 큰 가르침이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기드온 사역은 그리스도인이 평생 헌신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