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으로의 삶

주님을 만나기 전만 하더라도 면벽에 반가부좌로 반야심경을 독송하면서 새벽을 깨우며 하루를 시작한 독실한 불교 신자였습니다. ‘만화거사라는 불명도 받았습니다. 사형수 교화스님이 신 삼중스님이 쓰신 가난이 죄가 아닐진대 나는 죄가 되어 죽습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며 그들의 명복을 염주에 담아 빌기도 했습니다. 초하루 보름에는 법회에서 사회도 보고, 불자 문인들과 함께 교도소, 소년원에서 재소자들과 어울려 축구도 하고 교화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는 이런 나의 생활이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가 기드온의 회원으로서의 지금, 이 순간은 참으로 감회가 남다릅니다. 감히 나는 나의 변신을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르심의 은혜와 예수로 살아가는 삶

201263일 예순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당시에는 알 수 없던 어떤 이끌림에 의해 스스로 간 주님의 집, 부산남부교회. 그날은 나에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된 역사적이고도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저를 구원하기 위한 딸과 사위, 아내의 간절한 기도는 마침내 부르심의 은혜로 이어지고, 이미 초로에 접어든 용서받을 수 없는 보잘것없는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부르신 것을 저는 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흥집회 참석 후, 제자훈련, 양육 교육, 셀 모임 등 세속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주님께서는 때에 따라 맞춤 처방으로 붙들어주시고 지난날의 방탕한 생활을 품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점차 주님이 저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느끼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끊임없이 그리스도인으로 다듬어 가시는 주님, 마침내 한국 국제기드온협회 기드온의 용사가 되다

돌이켜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지경을 넓히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은 새가족 섬김, 유초등부 교사(차량운행), 국수 전도, 아버지 학교 수료, 평신도 전문인 선교단체 훈련 수료와 터키 쿠르드 민족을 품은 의료선교, 그리고 한국 국제기드온협회 동부산캠프의 회원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캠프 회장을 통로로 저에 대한 그분의 뜻을 계속 펼치시며 이루어 가도록 이끄셨습니다. 본 캠프의 주간기도회와 제57차 전국대회에 처음 참석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순서 하나하나에 가슴 뭉클함의 감동과 감격스러움에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세워 한국 기드온의 큰 그림을 목도하게 하셨습니다.

 

회원으로서의 위대한 첫 경험

양산지구 LSB(성경대량배부)사역은 위대한 첫 경험이었습니다. 양산범어고등학교 남녀공학 학생들과 부산대학교에서 성경을 전했습니다. 저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슴 벅찬 가운데 먼저 양산범어고등학교 성경배부의 현장에 섰습니다. 받기를 거부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땅끝까지 이르러 전도하라는 말씀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배부했습니다. 등교 시간에 쫓겨 한꺼번에 무리 지어 몰려오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성경을 나눠줄 수 없는 현장의 어려움에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건네주는 성경책을 받아든 학생들, 거부하는 학생들 모두 한결같이 감사합니다라며 목례하는 선하디선한 눈길에서 장차 저들 중에서 누군가는 나와 똑같이 이 자리에 서서 기드온의 성경책을 전할 것이다라는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벅차고 공연히 마음이 바빠지기도 했습니다. 녹록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오직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담대함으로 성경을 배부했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전한 두 차례의 성경배부 사역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기드온 사역에 대한 부르심의 사명을 확인하고 온몸으로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배부한 기드온 성경이 길잡이가 되고 누군가의 삶을 주께로 인도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두 번에 걸쳐 성경을 배부하면서 이 약속의 말씀을 온몸으로 품었습니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저에게 2번의 성경배부와 전국대회 등은 소중하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많은 것을 훈련하고 익히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린 주 안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납니다. 주 안에서 기드온에 있을 때 더욱 빛이 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손동수 회원 (동부산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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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드온에 입회하게 된 동기는 지금은 소천하신 고) 박해석 (전 전국회장) 회원의 권유로 2007922일 입회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1살 차이로 친구 같은 부부였습니다. 열정적인 제 성격과는 달리 남편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1~2년 정도 기드온 사역을 함께 하던 초겨울 어느 날, 작은아들이 수능 치는 날, 남편은 두 아들과 저를 남기고 갑자기 삼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너무 놀라 낙심한 작은아들은 그날 수능시험을 포기하려다 겨우 시험장에 가서 어렵사리 시험을 치뤘습니다. 너무나 갑자기 당한 남편의 소천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소중하고 귀한 것이 많지마는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말과 생각으로만 알던 것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주님은 실의와 낙심에 주저앉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야보고서 말씀에 우리 인생은 아침에 잠깐 보이는 안개와 같다는 것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사망보험금이 나왔습니다. 남편의 생명과 바꾼 귀한 돈을 어떻게 쓸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 당시 우리 교회에서 중국에 사이버 신학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거다!’ 남편의 죽음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두 아들과 의논하고 결정하여 목사님께 말씀드려 무명으로 신학대학 설립에 헌신했습니다. 그 뒤 많은 일반인, 신학생들이 인터넷으로 공부했고, 접속이 폭주되어 마비가 될 정도로 인기 있는 대학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주의 종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사이버 신학대학이 어떻게 해서 설립되었는지 누가 묻거나 궁금해 하면, “어느 한 형제가 짧은 생을 마치고 그 목숨값으로 받은 사망보험금으로 설립된 학교인데,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시길 기도 부탁한다.”고 늘 말씀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당시 큰아들은 서울신학대학 1학년이었는데 지금은 전주성결교회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수능시험을 망친 둘째 아들은 지금은 저랑 같이 통영에서 해산물 도 · 소매업을 하며 가업을 이어가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아들에게 큰 은혜를 주셔서, 큰아들은 주의 종으로, 둘째 아들은 가업을 이어받으며 사업가로 살아가는 은혜를 주심은 이후로 더욱 주를 위해 살라는 위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혼자 가정을 일구어야 한다는 숙제 앞에서, 해산물 소매업부터 시작했지만 문어, 전복, 소라, 해산물, 조개류 등 말 못하는 생물이라 온도가 1도 차이만 나도 죽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또 단골 고객이 없어 재고로 남은 생물은 결국 죽어버리는 일들이 계속되어 해산물 소매업 5~6년 동안은 정말 버티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빚만 자꾸 늘어갔습니다. 형제들에게 빚을 얻어 다시 시작해 보아도 가게는 일어서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4~5년 전 겨울부터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보내야 할 택배가 산더미같이 쌓이고 노점 상인들도, 도매상인들도, 소비자들도 줄을 서서 기다리며 물건을 사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위로하시며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돌아보니 그 바쁜 가운데서도 기드온 사역의 줄을 놓지 않게 해 주신 결과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드온 모임에는 빠지지 않았고. 아침 학교 앞 성경배부 시간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교문 앞에서 성경을 배부하다가 선생님께 쫓겨나 교문과 멀리 떨어진 버스 승강장에서 전하다 보면 기드온성경을 받는 학생들이 너무 고맙고 이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이 학생들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 믿고 이 나라를 말씀으로 이끌어가는 훌륭한 인물이 되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했습니다. 아침에 가게에서 일하다 시간 맞추어 학교 앞에 달려가서 보면, 늘 시간에 쫓기듯 참석하다 보니 위의 옷은 갈아입었는데, 장화를 신고 간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직 · 간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아름다운 발걸음으로 땅끝까지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남편이 내게 주고 간 선물 중 가장 큰 것은 두 아들이요, 또 하나는 기드온 부인회원으로 가입시켜주고 간 것입니다. 회원의 자격을 선물해 주고 간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고, 그렇기에 이 사역이 더 귀하고 보석 같습니다.

 

김옥순 부인회원(통영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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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에서 꿈많은 청소년 시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하체 마비 증세로 다니던 학교도 휴학하고 13개월 동안 긴긴 투병 생활을 이겨내고 다시 학교에 복학했으나 이제 후배들과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의 성취가 이전과 현저히 떨어져 정신적인 엄청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교회에 한 번만 가자는 권유로 난생처음 교회에 나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에는 관심이 없고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안 나올 명분을 찾던 중에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전도사님께서 표지도 없는 성경을 건네주시면서 감동이 되는 구절에 줄을 치며 읽으라고 했습니다. 전도사님은 대학교에서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내가 고민하던 문제에 해답을 푼 것처럼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성경도 읽다 보면 이치에 맞지 않고 틀린 내용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핑계 삼아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돌아온 후,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성경은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재미없는 족보 이야기가 끝나자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동정녀 탄생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을 찾아가 따져 물었는데 전도사님은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해 주시면서 성경을 계속 더 읽으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는 중에 예수님의 행적 중에 일어난 사건들에 관한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따져 묻기 위해 교회에 계속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대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신약성경을 세 번째 읽던 중에 당시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신비한 체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믿을 수 없던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졌고, 예수님이 믿어졌습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성경은 후에 알게 되었지만, 기드온에서 발행한 한쪽에 영어, 또 한쪽에는 한글로 된 성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기드온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후에 목회자가 되어 현재 섬기는 서울알곡교회를 개척하여 35년째 섬기는 은혜와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경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라는 믿음으로 목회하고 있습니다.

유상현 목사(서울알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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