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드온의 출범

서울에 점화된 기드온 횃불

한국에 기드온 횃불이 처음으로 타오른 것은 1963년이다. 당시 인하 대학교 영문학부 교수로 있던 현수길 장로가 미국의 국제기드온 본부로 “성경책을 보내줄 수 없겠느냐?”는 편지를 띄운 것이 한국에서의 기드온 사역이 시작된 동기다. 영락교회를 시무하던 현수길 장로는 교회가 개척한 13개의 농어촌교회 교인들에게 남·여 연합면려회 주관으로 .성경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다가 유학차 미국에 갔을 때 호텔에서 봤던 기드온 성경이 문득 머리에

떠올라 “국제기드온 본부로 연락만하면 보다 많은 성경을 농어촌 교회에 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미국으로 편지를 띄웠던 것이다.

현 장로는 이 편지에서 “우리들에게 성경을 보내주기만 하면 얼마든지 배부할 수 있으니 성경을 많이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2~3개월이 지났을 무렵 국제기드온 본부로부터 회신이 왔다. 내용은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기드온 성경은 기드온 회원들만이 취급하게 되어 있으므로 성경 배부에 관심이 있으면 한번 나서서 한국에 기드온 단체를 조직해보라 ''

이상은 기드온 회지 제324호(2003. 10. 10자)에 게재된 현수길 장로의 기고문 ‘한국국제기드온협회 탄생 약사' 의 일부 내용이다. 그 이후의 과정을 통해 한국기드온 탄생의 구체적인 경위를 살펴보자.

국제기드온 본부의 회신을 받고난 다음 2~3일 후에 어떤 분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한 5년 전쯤에 한국에 기드온 단체를 조직하려고 10여명이 모여 일할 임원을 선출하게 되었는데 먼저 회장을 선출하려 할 때 의견들이 서로 맞질 않아 언성이 높아가 면서 왈가왈부하는 바람에 회의 분위기가 시끄러워져 미국에서 나온 대표가 ‘이런 분위기에서는 기드온 단체를 조직할 수 없으니 기도 합시다' 하고 기도를 마친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 다.

내게 찾아오신 그분 하는 말이 “한국에도 이 단체가 꼭 필요하므로 이 단체를 조직하고 싶어서 가끔 국제 본부에 편지 왕래를 하였는데, 본부에서 이 단체 조직에 관심이 있으면 미스터 현을 찾아가 의논해 보라고 해서 제게 찾아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서 기드온 사역의 내용을 듣고 우리 한국에도 이 기드온 단체를 꼭 조직해야 하겠다는 맘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국제기드온협회 본부에 “조직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더니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습니다.

기드온 회원이 될 사람의 자격은 첫째로 구원의 확신이 있는 기독교 실업인들과 직업인들로 7~8명만 있어도 기드온 단체를 조직할 수 있으니 한번 힘써 보라,

이 편지를 받은 나는 우리 영락교회와 새문안교회, 그리고 연동교회 등 여러 교회의 목사님들을 찾아뵙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실업인과 직업인들을 추천받아 국제 본부에 연락하였더니 본부에서는 1963년 10월 22일, 극동지역 담당 Mr. Everett Annin 이사를 파견해 주셔서 드디어 서울에 기드온협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J

서울에 기드온 캠프를 조직하던 날 서울 코리아하우스에 모인 기드온 용사들은 12명이었다. 현수길 장로의 회고처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실업인과 직업인'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여러 교회들을 방문하였으나 당일 참석자는 영락교회에서 10명, 새문안교회에서 2명뿐이었다.

한국 땅에 기드온의 횃불을 처음으로 지핀 이들 형제들은 최창근(동영물산(주)사장), 장태순(무역회사 사장), 정석복(대한모방 상무이사), 현수길(인하대 영문학교수), 김정순(보성여고 교장), 김익환(페인트공장 사장), 김수철(서울대 치대 교수), 김영철(스타 섬유주식회사 사장), 이규근(대성제재소 지점장. 이상 영락교회 장로), 함종섭(동영직물 상무이사, 영락교회 안수집사)등 영락교회 교인 10명과 방순원(대법원 판사), 허봉락(일신방적공장 영업부 이사, 이상 새문안교회 장로) 등 새문안교회 교인 2명이었다. 또 캠프 임원으로는 회장에 허봉락 장로, 부회장에 최창근 장로, 총무에 현수길 장로를 뽑았다. 이렇게 탄생한 한국기드온은 65번째의 기드온 회원국이 되었다. 이들은 소속은 비록 서울캠프였지만 한국에 기드온의 횃불을 처음으로 치켜든 한국기드온의 선봉장들이었다.

이들 기드온 용사들이 성서를 기증하기 위해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호텔이었다. 서울캠프 회원들이 첫 성서기증 대상을 호텔로 삼은 것은 기드온 사역의 출발이 호텔과 인연이 많은데서 비롯되었으리라. 국제 기드온협회의 초기회원들은 대부분 여행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여행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호텔에서 그들을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궁리를 거듭한 끝에 생각해 낸 것이 호텔에 성경을 기증하여 비치하는 일이었다.

우리말로 된 기드온 성경이 준비되지 않아 성경기증에 애를 태우던 서울캠프 회원들은 우선 국제본부가 영문으로 된 성경전서 5백권을 보내주자 64년 2월 1일 반도 . 조선 두 호텔을 찾아갔다. 객실 수량만큼 조선호텔에는 53권을, 반도호텔에는 113권을 각각 기증했다. 그리고 3월 13일엔 워커 . 힐을 찾아가 역시 영문 성경 264권을 기증했다. 이 성경기증은 한국에도 드디어 기드온 사역이 시작되었다는 상징성 때문인지 당시 교계신문(1964년 2월 8일자 크리스찬 신문)은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주간기도회는 여행객들이 많은 서울 역 구내식당에서 모였다. 기도회 장소를 서울 역으로 정한 것은 여행자가 함께 기도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배려로 보인다. 그러나 ‘주간기도회에서는 어떤 형태의 설교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이드북의 지침과는 달리 주간기도회에 목사님을 초청, 설교순서를 가진 것은 좀 특이했다. 당시 서울캠프의 주간기도회를 소개했던 크리스찬 신문(1964년 2월 12일자) 관련기사를 여기에 옮겨본다.

지난 2월 12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역 구내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 합창은 온 서울 역 구내에 울려 퍼져 여행자들의 시선과 귀를 모았다. 신년들어 두 번째로 모이는 국제기드온협회 서울지부가 주최하는 아침기도회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실시되는 이 아침기도회는 교파와 국경을 초월하여 예수를 믿는 실업인 직업인 또는 여행자이면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도록 개방된 기도회다. 이날 설교를 맡은 서울 장로회신학교 총무과장 이용학 목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는 기드온협회가 되어 불신의 한국사회에 성서반포사업을 통하여 공헌할 사명이 크다, 고 강조했다.

7분간의 설교가 끝나자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에 김대보 장로, 교회부흥을 위하여 이상인 장로, 회원을 위하여 정석복 장로, 복음전파와 교회통일을 위해 장태순 장로 등의 각 2분씩 조목기도가 있었다. 아침식사까지 나누면서 가지는 30분간의 짤막한 친목과 아침기도회가 마치면 출근시간에도 알맞는 시간이 된다.

기드온협회는 불신자들을 예수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방법으로 1.전문 실업인들을회원으로 확보하여 2회원이 처한 직장에서 개인 전도를 하며 3.불신자들에게 성서를 반포하는 사업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기드온협회의 사업을 일반 평신도들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3월 14일 주일에는 무학교회와 신광교회에서, 3월 21일에는 성광교회에서, 4월 4일에는 후암교회에서 각각 순회예배를 가진다.

오는 3월 12일에 다시 모이는 아침기도회에는 더 많은 크리스천 실업인들과 여행자들의 참석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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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국제기드온협회